대한태권도협회 상임심판 엄영섭
       대한태권도협회 상임심판 엄영섭
굳이 써든데스까지 갈 필요가 없다.

요즘 태권도 경기를 보자면, 매회전 5~7초를 남기고 체력 비축을 위해 “야 됐어! 됐어!” 하며 다음 회전을 준비시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선수들도 무리해서 공격하지 않는다. 그렇게 허망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3회전 합치면 20초가 넘는다. 이렇게 하다보니 태권도는 당연히 재미없어지고, 경기의 맥이 풀린다. 굳이 전자호구경기에서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면서까지 다음 회전, 써든데스를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

전자호구는 선수들의 발차기 파워값이 측정된다. 일정한 파워값이 넘어가면 득점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 득점으로 인정되는 파워값이 25라고 한다면, 득점이 되지 않더라도 25에 가까운 발차기를 많이 한 선수에게 우세승을 주면 된다. 굳이 다음 회전, 써든데스를 준비하며 허망하게 시간을 끌고, 재미없는 태권도를 만드느니, 그렇게라도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빨리 경기에 임하게 하는 것이 낫다. 물론 득점으로 인정받지 못한 얼굴 발차기는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가 되겠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태권도 룰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두 번째. 발바닥 센서를 제거해야한다. 발바닥 센서 제거는 필자가 수없이 많이 제기해온 문제다. 발바닥 센서 때문에 선수들이 3회전 내내 발을 들고 터치의 기회만 노린다. 경기를 보는 관중 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코치, 판정하는 심판, 심지어 경기에 임한 선수들 본인들에게도 맥이 빠지는 경기가 되어버린다. 박진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태권도 경기를 일부에선 닭싸움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 뿐 아니다. 발만 들고 있는 경기 자세 때문에 선수들의 부상이 많아진다. 서로의 발을 커트하려다가 발끼리, 정확히는 발의 뼈끼리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의 안전이 제일 큰 문제고, 그 다음은 경기 자체가 굉장히 지루해져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발끼리 부딪치면 누군가는 통증 때문에 경기장에 쓰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태권도는 기술과 정확한 발차기가 아니라 뼈가 강한 사람이 이긴다고 할 정도다. 한번 뼈와 뼈가 부딪치면 그 이후로는 뼈가 약한 선수가 무서워서 먼저 공격을 못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커트발 싸움에서 지면 그 경기는 져버리게 된다.

과연 이게 제대로 된 겨루기, 제대로 된 태권도일까. 언제부터 태권도가 힘세고 뼈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경기였나. 서로 스탭과 발차기를 뽐내며, 정확하게 목표지점을 타격하는 기술의 장이 되어야지, 서로 부딪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곧 지루한 경기의 출발점이다.

당장 발바닥 센서 제거가 어렵다면, 발바닥을 오래들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에게 경고를 주는 차선책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태권도가 재미있어지고,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이런 생각들은 태권도를 사랑하는 이들 누구나 할 수 있고, 모두가 알고 있으나 차마 입에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시경>에 “저 배의 흐름이며 정착지는 알지 못 하겠도다, 마음의 근심이여, 옷 입은 채 잠잘 겨를도 없도다.” 라고 했다.

우리 태권도 지도자들의 근심도 말은 못해도 진실로 그러할 것이다.

세계태권도연맹의 조정원 총재는 4선에 성공하자마자 세계연맹구조조정과 경기규칙 보완을 하여 태권도가 전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올림픽 종목에서도 영구히 존재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천명하였다.

이제 조정원 총재가 진정으로 나서야할 때이다. 태권도를 바로 다스리고 지켜나가야 하는 세계 태권도의 수장 조정원 총재가 나서지 않는다면 태권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지 않겠는가. 세계연맹이 나서서 대대적으로 경기규칙을 수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일개 회원국에서 먼저 나서서 규칙을 만들고 실행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 상임심판 엄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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