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에 충성스러운 신하와 근실한 선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형세가 기울어 지탱할 수 없으며, 사방을 둘러봐도 손을 쓸 수 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급 관료는 아래에서 희희낙락하며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고, 고관대작은 위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오직 뇌물을 챙겨 재산만 불리니, 뱃속은 썩어가는 데도 약을 쓰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또 서울에 있는 신하는 궁궐에다 사람을 심어놓고 마치 깊은 못 속에 용처럼 서리서리 얽혀있고, 지방에 신하들은 백성에 가렴주구를 하여 그 자취가 온 들판에 낭자하니 가죽이 모두 벗겨지면 털도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신이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며, 잠 못 이루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억누르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
이 글을 쓴 이는 이른바 사림 정치가 시작되는 명종, 선조 간의 앞 시기를 대표하는 남명 조식이라는 사람으로, 평생 재야에 머물렀다. 1553년 퇴계 이황이 그에게 현실 정치에 참여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했고, 1555년 명종이 그를 단성현감에 제수했으나 이 역시 거절했다. 이때 그가 거절 사유를 밝힌 것이 바로 위에 보이는 “을묘사직소”이다. 백성 없이는 왕도 없다는 조식의 말은 직설적이고 간결했다. 왕과 백성은 공생의 관계라는 뜻이다.
KTA 김태환 회장이 취임 때 한 얘기는 변화와 개혁이었다. 그런데 취임한 지 2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안착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민심이 떠나고 있다. 자고로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천심은 무엇인가. 천심은 어디에 있는가. 천심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천심을 찾는다고 백날 하늘을 뒤지고 살펴봐도 소용이 없다. 천심은 바로 백성(민초)들에게 있다. 지금 KTA와 김태환 회장은 민초들을 살피고 배부르게 다스려야 한다. 이 문제는 그들이 시급하게 답을 내놓아야할 숙제다. 옥상옥을 만들려하는 자세나 측근 몇 사람들에 놀음에 함께 장단이나 맞추어 권력 나누어 먹기에 춤을 추고 있어서는 안 된다.
현 집행부도 완전하게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별 위원회니 뭐니 하는 것은 너무 한가로운 소리다. 일선 태권도장 관장들은 대탕평, KTA 변화개혁, 임원인선, 특별위원회 등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할 뿐이다. 현재 일선 도장에서는 신학기가 되었는데도 신규 입관생들이 없어 도장이 죽을 지경이다. 하루 종일 도장에 있어도 도장 문을 열고 들어와 입관절차를 물어보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모두가 이대로 가다가는 체육관 문을 닫을 지경에 처했다. 배가 고파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한가하게 자리 다툼이나하고 공신 싸움이나 하고 있을 판인가? KTA가 존재하는 것은 일선 도장이 있기 때문이다. 일선 도장이 살아야 KTA도 함께 산다.
그래서 일선 도장이 살아날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태권도장의 차량운행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체육관에서 차량운행을 실시하던 것은, 과거 태권도장이 많지 않았을 때, 태권도장과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 집과의 거리가 멀어 아이들이 혼자 걸어가기가 힘들어 시행하던 것이다. 지금은 어느 동네라도 주변에서 쉽게 태권도장을 찾을 수 있다.
지난 2월말 경남 창원에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아이가 태권도장 승합차에 3m 정도 끌려가다 애석하게도 숨을 거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이번 한번 뿐은 아니었다. 꼭 태권도장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통학 버스에서 아이들이 위험에 빠진 사건은 종종 뉴스에 소개되었고, 바로 엊그제도 서울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현행법상 13세 미만 어린이 통학버스에는 어린이 안전띠와 승강구 발판 등 보호 장비를 마련해야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특약 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채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곳들이 있다. 또한 운전기사 외에 아이들이 타는 뒷좌석엔 보조교사나 사범도 함께 탑승해서 아이들을 보호해줘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곳들이 많다. 물론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게만 운영된다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차량운행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지금 우리네 태권도 체육관들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보니 차량운행에 대해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KTA에서 나서서 차량운행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짚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안전한 차량운행을 할 수 없는 조건의 도장(예를 들어 차량에 어린이용 안전벨트, 승강구 발판 등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보험 가입이 되지 않은 곳, 관장 혹은 사범이 직접 차량을 운전하여 뒷좌석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태권도협회 만의 규제를 통해 강제로라도 막아야한다. 그게 아이들을 위해서도, 태권도장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태권도장의 차량운행을 제한했을 때 당장은 아이들도 불편해할 수 있고, 도장도 반발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제한으로 하여금 보다 안전하게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만 된다면 학부모들도 태권도장에 대한 호감을 갖고, 아이들을 더 믿고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차량운행을 하지 않는 것은 또한 나름의 기대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차량운행을 제한했을 때, 태권도장에 발생할 수 있는 기대효과로는 ① 관장 혹은 사범의 이미지 회복(태권도 지도자가 아니라 운전기사로만 보이던 이미지) ② 차량운행에 따른 시간 및 유지비 절감 ③ 차량운행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 태권도 지도에만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있다.
당장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고, 보다 많은 아이들을 태권도장으로 데려오기 위해 차량운행을 할 것이 아니라, 안전한 시스템을 갖춰놓고 신뢰를 통해 아이들을 태권도장에 데려올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할 것이다.
둘째, 태권도장 간에 거리 제한제가 부활해야 한다. 과거 태권도장 간에 거리 제한은 근방 500m 내에 1곳의 도장만 운영되도록 진행되었었다. 하지만 이제 태권도장 거리제한제가 폐지되어 500m는 커녕 200m 안에도 도장이 또 있는 현실이다. 그만큼 기하급수적으로 태권도장이 늘었고, 이는 서로가 더 잘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어렵게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이라도 태권도장간 거리제한제를 두어 현재 운영되고 있는 태권도장들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
셋째, 미디어 매체를 총동원하여 태권도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수많은 광고가 집행되고 있다. TV, 라디오, 신문 뿐만 아니라 인터넷, 모바일까지. 태권도도 이런 매체들을 이용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태권도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 개의 도장에서 이런 매체들에 광고를 집행할 만한 비용을 투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KTA 차원에서 단순히 태권도장 광고가 아니라, 태권도 자체를 국민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알릴 수 있는 광고를 집행하면 어떨까. 주부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 어린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워야하는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혹은 태권도를 통한 다이어트나 호신술, 건강증진의 필요성에 대해 광고를 집행해 알리는 것이다. 특정 태권도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태권도가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부흥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KTA에 속한 수많은 일선 태권도장을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제시한 태권도장 살리기에 KTA가 나서야 한다. 글의 초반에 언급했던 남명 조식은 이런 상소를 올린 적이 있다.
“온 나라가 곪을 대로 곪았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려하지 않습니다.”
이 상소를 받아본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이 스물을 갓 넘긴 명종이었다. 당시 중종과 문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명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탓에 그의 모친인 문정왕후가 그를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 수렴청정의 기간 동안 문정왕후의 피붙이인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들은 권력을 마음대로 농단했고, 이로 인해 국내외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결국 이러한 혼란기에 가장 고통 받는 것은 민초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조식은 이런 상소를 올린것이다.
“대비(문정왕후)는 구중궁궐에 한 과부의 불과하고, 국왕은 아직 어리니 돌아가신 왕의 고아일 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직언을 남겼다. 조식은 생각했다. 왕이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존망이 달렸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그였기에 나라를 위해 왕에게 그런 직언을 할 수 있던 것이다. 나라의 현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지금 KTA에는 남명 조식은 아니더라도, 누구 하나 내 탓이오 혹은 무엇이 잘못되고 있소 나서는 사람이 없고, 그 많은 공신들은 자기 밥 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 밑에서 민초들은 당장 밥 먹고 살기 힘든 형국이다.
스스로 현재 KTA의 공신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자기 밥그릇이 아니라 수많은 태권도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엄영섭 / 대한태권도협회 상임심판,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심판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