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업가 태권도계 장학사업으로 환원
“후대에 도움이 되는 태권도 대변화는 필요”

▲ 최영길 대한태권도협회 고문
▲ 최영길 대한태권도협회 고문

최영길 대한태권도협회 고문은 자신을“어리석고 순수하다. 그러나 가는 곳 마다 올바르게 성실한 자세로 최선을 다했다. 아직 나는 꿈을 꾼다.”고 표현한다.

어리석고 순수하다는 말은‘열정’이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최 고문은 평생동안 열정을 가슴에 품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아직도 그는“태권도계에 할 일이 남아있다”면서“70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 고문은 울산 남목에서 태어났다. 넉넉지 못한 집안 살림으로 몇 십리에 있는 학교를 걸어 다녔다. 청소년 시절 최 고문은 주경야독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다. 그렇다고 태권도 수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부산 부일체육관에서 태권도 수련을 한 그는 울산과 부산을 오가며 공장, 학교, 도장을 다녔다. 열정 없이 불가능했을 것.

최 고문은“아마 하고자 하는 마음, 열정이 없었다면 울산 부산을 오가며 태권도 수련, 공장, 학업 등을 못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술회했다.

열정이 컸던 만큼 결과도 빨랐다. 최 고문은 1966년 국가대표로 첫 발탁된다. 경남지역 최초의 국가대표로 당시 지역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다는 게 최 고문의 설명이다.

최 고문의 1인 4역의 삶은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진학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하루 3시간 잠을 자면 행복 했을 정도였다는 것. 동아대 학생으로, 공장 직원으로, 태권도 선수로 여기에 도장 운영까지. 24시간이 부족할 만큼의 치열한 삶을 살았다.

최 고문은“화려했지만 치열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동아대 학생으로, 공장직원, 선수, 도장 운영까지 열심히 살았다. 20대를 이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게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큰 자본이자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고문이 기업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은 건 30대 초반이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도장 자리에 건물을 지은 게 인연이 돼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기업인으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치열한 20대를 보냈던 그였기에 주변의 우려 섞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 놓았다.

사업은 서울로 상경한 후에도 승승장구한다. 최 고문은“서울에 자리 잡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습관처럼 몸에 베인 성실함으로 주변의 많은 걱정을 떨치고 사업이 번창하게 됐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쳤던 그였기에, 사업이 번창하는 만큼 주변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남달랐다.

최 고문은“젊은 시절에도 주변에 넉넉지 못한 분들, 불우한 환경에 처한 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가 덜 쓰고 덜 입더라도 그분들을 먼저 배려해 주었다. 내가 더 고생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챙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업가로 길을 걷기 시작한지 40 여년이 지났다. 성공한 사업가로 태권도계에 환원하고픈 의지가 강하다. 최 고문은 태권도계 장학사업에 관심이 크다. 7년 전인 2012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중고태권도연맹, 울산광역시태권도협회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최 고문은“고향인 울산시에 보탬이 되는 게 무엇인가 고민하다, 체육 꿈나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체육꿈나무들에게“선수로서의 근성과 올바른 인성을 갖춘 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 최영길 고문은 지난 2012년부터 울산광역시 체육우수꿈나무 선수들에게 체육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최 고문은 장학사업을 더욱 확대해 태권도계에 혜택을 줄 계획이다
▲ 최영길 고문은 지난 2012년부터 울산광역시 체육우수꿈나무 선수들에게 체육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최 고문은 장학사업을 더욱 확대해 태권도계에 혜택을 줄 계획이다

최 고문은 장학사업을 더욱 확대 할 계획이다. 체육꿈나무들에게 진행되고 있는 장학사업은 유지하돼 태권도계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최 고문은“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하지 않았다. 대략적으로 17개 시도협회와 5개 연맹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 마련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구체적 세부사항을 말할 수 없지만 태권도계로 장학사업을 확대하는 건 내의지이고 반드시 실행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최 고문은 이어“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즐거움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행복이고 무서울 것도 없다”고 장학사업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인터뷰 말미에 최 고문에게“작금의 태권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란 질문을 했다. 최 고문은 할 말은 많아 보였으나 말을 아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착각하고 그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땠다. 태권도 각 분야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바른길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최 고문은 이어“태권도계 원로이든 중진이든 이제 후대를 생각해야 된다. 후대에 좋은 유산을 물려줘야 되는데 아직 이런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게 작금의 현실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 고문은 끝으로“명분도 없고 정당하지 않지만 이것이 옳고 바르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주변에 둘러싸여 이러한 착각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이들이 사람 같지 않을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최 고문은“아직 태권도계에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열정, 성실, 의지로 20대를 불태우고 30대에 기업인으로 첫 발을 내딛어 성공한 삶을 걸어왔다. 태권도인으로서 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삶을 이제 태권도계에 환원하고자 고민의 시간을 거듭하고 있는 최 고문.

태권도에 해야 할 일이 태권도계에 대변화를 이끌어 후대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WTN 월드태권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