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국립 예술과학고등학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두뇌를 지닌 학생들이 모이는 영재학교로 유명하다. 또한 이 학교에 갖춰진 실험장비나 시설들 역시, 매우 최첨단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진짜 유명한 것은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구간보다 허름하다는 얘기까지 듣고 있는 이 학교의 기숙사다. 학교 시설은 최첨단을 자랑한다는 그곳에서 기숙사는 왜 그렇게 허름한 것일까.  이유는 바로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에 있다. 하늘로부터 뛰어난 능력을 부여받은 대신 사는 것에는 덜 누려야 하고, 자신의 능력은 세상을 위해서 써야 하는 사명감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능력 있는 자들이 충분히 누리고 살면 오만해진다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며,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또한 그런 깨달음을 통해 항상 넘치려는 자신을 제어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이스라엘에 있는 학생들 뿐 아니라, 여기 대한민국의 태권도 경기장에 나서는 심판들에게도 필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심판들은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에 수없이 경기규칙을 공부하고, 숙지한다. 그것이 당연히 심판이 해야 할 일이며, 심판 판정 하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심판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 경기에서 판정 실수가 없도록 기도하고, 기원한다. 경기 중에 잘못된 오심으로 인해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올바른 판정만을 내려 공정한 경기를 이끌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도가 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심판의 실수로 인해 영상판독 요청이 발생하고, 이런 일들이 판독 결과 실제 심판의 실수로 밝혀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판에게 있어선 엄청난 스트레스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올바른 판정은 심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심판의 ‘작은’ 실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는 ‘큰’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상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많은 이들에게 심판이 신뢰받는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던 겸손의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 5월말, 제95회 전국 소년체전이 강원도 일대에서 열렸다. 태권도 경기는 태백 고원 체육관에서 각 시도 협회의 열띤 응원 속에 성대하게 진행됐다. 약간의 소란스러움도 분명 있었지만, 당초 우려들과는 달리 경기는 비교적 잘 치러졌다. 특히 그동안 여러 대회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채택된 몸통 뒤발 돌려차기 2점제는 심판, 지도자, 각 시도임원들의 우려보다 큰 문제없이 진행되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석한 심판위원장은 “심판들이 힘들고 어려운 2점제를 큰 혼란 없이 소화해주어 고맙다.”고 말했고, 기심회 윤웅석 의장 역시, “걱정했던 것 이상으로 몸통 2점제는 잘 해주었다.”고 말했다. 많은 혼란이 예상되었던 경기규칙의 변화를 비교적 잘 소화해내기 시작하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이때가 심판들이 가장 겸손해져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칭찬의 목소리들이 나올 때, 심판은 스스로 긴장의 끈을 더욱 바짝 쥐어야한다. 한 규칙, 한 제도가 변화되는 시기에서 한 순간 자만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매진하지 못하면, 그 변화는 순식간에 실패의 길로 돌아서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 심판진들이 그 누구보다 능력 있고, 뛰어난 심판들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 능력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능력을 자기 스스로 과신하는 것과 남이 인정해주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일수록, 우리 심판들 스스로가 자신을 낮추며 바뀐 경기규칙 숙지에 더욱 노력해야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이다.
 
끝으로 지난 소년체전에서 매끄러운 경기 운영과 심판진들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강원도협회 임직원 분들, 그리고 심판차량에 함께 탑승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안내를 잊지 않으신 김영범 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한 바뀐 경기규칙 속에서도 큰 문제없이 경기를 잘 치러낸 우리 동료 심판들에게도 수고했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상임심판 엄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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