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해서 오히려 많은 것들을 잃곤 한다. 버리고, 내려놓아야 그 자리에 또 다시 새로운 것들이 들어설 수 있는데, 그럴 여유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한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한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버리는 일은 그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면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고 그녀의 책 <수도원 기행>에서 말했다.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지 잘 보여주는 글이다.

지금 우리의 태권도도 버리지 못해서, 얻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앞으로 태권도의 미래가 달린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그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던 말이 “재미있는 태권도를 만들어서, 관중이 찾는 경기장을 만들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 말은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태권도는 조정원 총재가 그렇게 강조하던 재미있는 태권도와는 너무 큰 거리가 있다. 이대로라면 태권도 경기장은 현대 스포츠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관중이 모두 외면해버리는 스포츠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세계의 주목을 받던 세기의 복싱대결도, 결국은 재미없는 경기력 앞에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재미만 추구하는 스포츠는 그 본질의 의미를 잃을 수 있어 조심해야하지만, 재미가 아예 없어 모두가 외면하는 스포츠는 그 존폐 자체가 위협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권도가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는 스포츠로 사랑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있다. 발바닥 센서를 제거한 채 경기를 치루고, 뒤차기공격은 부심들이 주먹득점처럼 채택하여 인정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태권도 경기장은 활기가 넘치고, 재미있어 질 것이다. 발바닥 센서를 제거하게 되면 지금 태권도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바닷게와 같은 발차기, 발펜싱, 제기차기는 사라질 것이고, 정확하고 강한 뒤차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코치도, 선수도 자신들도 모르는 득점에 어이없어 하는 일도 더는 없을 것이다. 반전에 반전이 이루어지는 경기장은 활기가 넘치고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심판의 공정성 때문에 도입이 되었던 전자호구는 이제는 전 세계 태권도인 들에게 충분한 인정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전자호구 자체를 없애는 일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기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까지 안고 갈 필요는 없다. 그게 바로 발바닥 센서다. 이제는 버릴 건 버리고, 재미있는 경기장 문화를 만들어야한다.
 
사람(심판)에 의한 오심보다는 차라리 기계(전자호구)에 의한 오심이 낫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기계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또한 사람이다. 기계가 재미를 뺏어갔다면, 사람이 그 재미를 다시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제도를 조금만 수정·보완한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태권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과거에 메이저리그에서는 심판을 평가하기 위해 스트라이크존을 판정하는 기계를 도입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제도가 폐지되었다. 심판들의 거센 반발도 큰 이유였지만, 기계에만 의존한 평가가 주는 위험성도 그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메이저리그가 아예 기계를 외면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비디오 판독 제도를 통해 보다 공정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이나 기계, 그 어느 한쪽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재미와 공정함을 모두 갖춘 경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태권도도 그런 조율이 필요하다. 전자호구는 유지하되, 발바닥 센서는 제거하고, 뒤차기 공격은 부심들이 득점 판정할 수 있게 한다면 분명 지금보다 재미있어질 것이다. 이긴 선수나 코치 본인들도 모르는 득점들. 그리고 그렇게 어이없게 경기에 패한 선수와 코치의 허망한 표정들을 언제까지나 두고 보기만 할 수는 없다. 이긴 선수는 본인의 그동안의 훈련의 성과에 환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패한 선수는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경기장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태권도를 이끌어 가는 수장들은 자신의 부귀영화보다는 태권도호의 백년대계를 걱정하고, 무한한 책임을 함께 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영달만을 위해 처신한다면, 태권도호는 침몰하고 말 것이다. 자신을 던져서라도 침몰하기 직전에 태권도호를 구해내야 한다. 그것은 발바닥 센서를 제거하는 일일 것이다.
 
리우올림픽의 전초전인 세계선수권대회가 엊그제 끝났지만, 아직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현실이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쳐본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격려가 필요하다. 모든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 자랑스럽고 수고들 하셨다. 이번 세계대회를 발판삼아 더 분발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언제까지 대회가 끝나면 ‘누구의 책임이다’ ‘어느 조직의 잘못이다’ 는 말만 늘어놓을 것인가. 책임의 여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는 정말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대책을 만들어야한다.
지금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것들 중에서 내려놓아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경기장의 재미라는 요소를 다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상임심판 엄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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