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경기의 심판을 본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힘든 일이다. 경기시작 전부터 후까지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기반성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년 이상을 코트에서 심판을 보고 있는 필자도 매번 첫 경기, 첫 게임에 들어갈 때면, 어떻게 해야 오늘 하루 코트에 들어온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경기를 무사히 잘 치룰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당한 걱정과 설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적당한 걱정과 설렘은 비로소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적당한 긴장감.
이것이 바로 심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긴장이 너무 풀어지면 경기를 보는 눈이 흐려질 수 있고, 너무 긴장을 하면 정신적으로 초조해져 경기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판은 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꾸준히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한다. 그런 힘이 갖춰졌을 때 스스로의 오심율을 최저치로 낮출 수가 있다.
우리는 이미 심판의 오심 하나가 선수와 그 선수의 소속집단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 중에서만 몇 명을 짚어 보더라도, 체조의 양태영, 피겨의 김연아, 펜싱의 신아람 선수가 오심의 아쉬움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디 그 선수들뿐인가. 그 선수들이 받은 오심으로 인해 선수들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온 국민들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만큼 오심은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오심의 심각성은 단순히 위에 언급한 세 선수가 참여했던 것처럼 큰 대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꼭 세계적인 대회가 아니더라도, 대회나 경기의 규모와 상관없이 오심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어떤 소규모 대회나 경기더라도 그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에겐 올림픽이요, 월드컵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심판진은 어떤 대회, 어떤 경기에서든지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 냉철하게 판단하여 오심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여러 덕목들을 갖춰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심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경기장에 비디오 판독제도를 도입했다. 사실 심판도 사람이기에 때론 실수를 할 수 있고, 이는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또 그만큼 심판의 실수가 너무나도 치명적이라는 것 또한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위해 비디오 판독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허나 이는 심판의 오심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1차적인 판정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심판들이 스스로 모든 면에서 강해져야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심판이 경기를 잘 치룬 날은 심판이 경기에서 심판이 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다.” 라는 말이 있다. 필자도 공감하는 말이다. 심판들이 스스로 강해지면, 심판은 그 경기장에서 존재감이 없어진다.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지만, 심판은 그렇게 존재감이 없어질 때, 사실 제 몫을 톡톡히 다 한 것이다. 경기의 흐름에 그 어떤 방해도 되지 않고, 그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경기를 운영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심판은 비로소 스스로 이기는 힘을 갖게 된다. 2015년에는 우리 태권도 경기장에서 심판들이 모두 멋진 그 “힘”을 보여주길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심판들이 강해지기 위해 갖춰야할 덕목들을 나열하며, 글을 줄이고자 한다.
2015 을미년 청양의 해, 모두들 굳건하시길.
[심판이 강해지기 위해 갖추어야할 덕목]
“외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해서는 안 된다.”
“양 선수 중에 누가 이길 것이라고 먼저 예단해서는 안 된다.”
“체력관리를 철저히 하여 선수들과 같이 3회전을 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평상심을 유지하려 노력하여야한다.”
“공정성은 기본이고, 늘 정직하여야한다.”
“경기의 성격이 크든 적든 심판은 항상 침착해야한다.”
“경기규칙을 항상 정확히 숙지하고 있어야한다.”
“판정에 늘 일관성이 있어야한다.”
- WTN 칼럼 리스터/ 상임심판 엄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