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사전적 의미는 운동경기에서 규칙의 적용여부와 승부를 판정하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심판은 경기장에서 경기가 시작되기 전 심판선서를 한다.

“대회에 참가한 우리 심판 일동은 경기규칙을 준수하고, 공명정대하게 심판에 임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그리고 심판들은 심판선서가 끝나고 경기장에 투입되기 전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 하루 판정에 임하는데 있어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판정을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물론 모든 심판들이 그렇게 기도하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다.

과거 어느 해인가 보리밭에만 가도 술이 취하던 심판 후배가 술에 잔뜩 취해 울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낮에 경기장에서 모 협회 전무이사가 “너 심판 똑바로 봐라. 이런 XXX야.”, “너 까불면 손가락 잘라버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형님, 이런 인신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심판을 봐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우리는 그 밤, 몹시 심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참자고 얘기했다. 변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니까.

심판을 보면서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해왔다. 화장실에 끌려가는 일, 밤중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 공갈 협박을 당하는 일 등등. 그래도 심판은 참아야한다. 참아야 했다. 아무리 아파도, 힘들어도, 우린 심판이니까,

심판은 아무리 잘해도 공공의 적일뿐이지 환영받는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심판은 늘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누군가 지도자들에게 왜 선수가 경기에 졌느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가 억울한 심판 판정 때문에 질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한때는 지도자들이 관중석에 있는 학부모님 보란 듯이 경기장에 뛰어내려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X같은 새끼들 장난질 하는 거야? 원, 더러워서." 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다시 자리로 올라가 버린다. 그 한마디로 경기장에 있는 심판들은 도둑놈, 나쁜 놈으로 매도되어 버렸다. 지도자가 그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그 심판에 대한, 경기에 대한 객관적 시선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심판은 그냥 무조건 잘못한 사람, 그 경기는 무조건 잘못된 경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허나 심판 입장에서도 분명 억울한 부분이 있다.

요즘을 생각해보자. 실상 지금의 경기규칙 시스템 하에서는 더더욱 지도자들이 심판에게 억울하게 당할 일이 없어졌다. 잡고 차는 득점, 손바닥으로 밀고 차는 득점, 갈려 후에 득점, 한계선 밖에서 차서 나오는 득점 등등은 모두가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고, 주심이 선언한 경고, 감점, 주먹득점까지도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단 우세 판정만이 예외다. 무엇인가 판정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비디오 판독으로 그 부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비디오 판독은 지도자, 선수, 경기임원들이 볼 수 있도록 오픈 시켜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과거의 몇몇 몰지각한 이들이 외쳤던 ‘장난질’ 못하는 경기장이 되었다.

그렇게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왜 우리는 서로 날을 세우고 깎아내려야할까. 이제 우리 모든 심판과 지도자들이 상생해야 한다.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건 잘못된 것이다. 서로 아끼고 보듬어야한다. 그것이 상생이다,

지금 우린 모두 다 벌거벗고 망망대해 바다에 떠있다. 협회에, 그리고 방송국에 수많은 투서가 들어가고, 모두가 믿지 못할 놈, 도둑놈이 되어버리는 작금의 형태다. 누가 이러한 사태를 막아주지 않으면 누가 심판을 보겠는가? 그리고 누가 태권도를 보겠는가?

그동안 우리 모든 심판들은 어떠한 비난과 험한 욕설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해 왔고, 노력해왔다. 이제는 만족하지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심판들의 욕구불만을 해소해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심판들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당근은 주지 않고, 채찍만 휘두를 것인가? 언제까지 심판은 늘 매도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할까. 격려와 칭찬을 주면 심판은 한층 더 분발할 수 있다.

엊그제 SBS 현장21에서 집중보도한 태권도 심판관련 보도는 어렵고 힘든 과정 속에서도 묵묵히 열심히 심판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심판들에게 대한 모욕이고,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그 방송을 접한 학부모들에게 우리 심판들 전부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해버리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든 심판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심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공정한 판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심판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손가락질과 욕설은 너무나도 버겁고, 힘겨운 것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백성을 다스리는 왕은 마치 활 쏘는 사람과 같아 그 손에서 털끝만큼만 빗나가도 결과는

엄청나게 어긋나게 마련이다.“

대한태권도협회 상임심판 엄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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