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전남 강진에서 제24회 용인대 총장기 태권도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 되었었다.

강진(康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4년여 간 머물다간 다산초당과 사의재, 모란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 월출산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 무위사, 붉은 동백꽃이 가득한 백련사 등 다양한 볼거리와 더불어 숨은 이야기가 가득한 고장이고, 위와 같은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영랑문화제’, ‘강진청자축제’, ‘청자문화제’, ‘마량미향축제’, ‘탐진강 은어축제’ 등도 있는 즐겁고 멋스러운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 사의재는 우리 심판들이 굉장히 느끼는 점이 많은 곳 중 하나이다. 사의재에 대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의재라는 곳은 내가 강진에 귀양살이 할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하니 담백하지 않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하니 장엄하지 않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는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儀齋) 라고 한다.]

사의재는 이처럼 ‘네 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자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을 요약하자면,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 할 것을 주문했던 곳이다.

최근 필자는 우리 심판진이 이러한 정약용 선생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심판들 미팅자리에서 했던 말들이 하루 밤만 지나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외부에 유출된다는 것은 심히 개탄스러운 일인 것이다. 더구나 풍선처럼 부풀려져서 없던 얘기도 사실처럼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정약용 선생의 말을 가슴에 담고, 말과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1년 사의재에 머물면서 썼던 구절구절이 21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상임심판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조용히 꾸짖고 계신 것이다. 생각과 용모, 언어와 행동. 언제 어디서나 바로 하도록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신다. 필자 역시도 이번 강진에서의 일정을 계기로 보다 말과 행동에 조심을 기하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리고 강진에는 또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가 있다.

약 300년 전 강진에 부임한 역대 현감들은 아전(조선시대 하급관리)들의 횡포로 소신 있는 행정을 펼칠 수 없었고, 때로는 현감자리가 비워있기도 했다고 한다. 아전들의 횡포에 현감들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그러다 1653년에 신유라는 자가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강진 아전들의 횡포가 강진의 지세 때문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진의 지세는 황소가 누워있는 형국, 즉 와우형이었는데 황소에 코뚜레가 없던 것이었다. 신임 현감 신유는 ‘황소는 코뚜레를 꿰어야 말을 듣는다.’라는 점에 착안해 코뚜레 자리에 연못을 파서 지세를 눌렀고, 그러자 아전들의 횡포가 사라지고 덕치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김현수 심판위원장과 심판들은 아침 일찍부터 강진읍이 내려다보이는 와우산에 올라 하루에 일과를 시작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심판에 다짐을 하고는 했다. 강진을 내려다보며 심판들 스스로 보다 말과 행동을 조심히 하고, 언제나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도록 다짐한 것이다. 아전들의 횡포가 사라진 후 공정하고 백성들이 살기 좋은 강진이 된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강진의 기운을 받아 보다 공명정대한 심판이 될 수 있도록 다짐했다.

강진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이만 줄이고 용인대 총장기를 위해 애써주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과 특별히 바쁘신 와중에도 불구하고, 우리 상임심판들에 각별하게 신경 써주신 박경한 전남협회 전무님께 감사에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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