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백년대계 (百年大計) 100년을 바라보며 세우는 계획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가운데 지금 태권도 현실과 현안들을 보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태권도 현실을 직시하고 현안 문제의 해법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정만순 충청북도태권도협회장 교육전문가로 33여 년 동안 교육 현장에 몸담아왔던 교육자로, 2010년 정년을 하면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태권도 행정가로 변신하여 더 바쁜 태권도 생에서 2010년 정년을 맞이하며 그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생(生)을 시작하는 해로 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정력을 다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 첫 번째 목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과 지식을 종합해서 ‘우리 태권도 백년대계를 위한 제안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둘째는 많은 재자 후배들의 의견들을 청취하고 그들의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언로(言路)를 여는 것이다. 세 번째 목표는 나의 태권도 이야기 회고록 출간이다. 이토록 해야 할 일이 산적한 탓에 정 회장은 매일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 태권도 및 교양 전문서적을 읽고, 6시부터는 건강을 위해 태권도 수련을 하고 있다.

충북태권도의 산증인이다. 충북협회뿐만 아니라 태권도 전체를 한 단계 발전에 이바지 할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다. 정만순 회장은 지난 78년 타계한 그의 형인 정갑순씨의 권유로 주성 중 2학년 때 태권도에 입문한 후 청주 무심천 청도체육관에서 40년간 충북 및 대한민국 태권도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70년 엘살바도르에 국제사범으로 파견돼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경찰, 군인 등을 지도했으며 77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제3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 아시아태권도연맹 경기위원장, 충북지방경찰청 무도지도연구관, 국기원 고단자 심사위원, 제3회 충청북도 도민대상 심사위원, 아시아 태권도연맹 기술이사, 충청북도 체육회 상임이사, 대한태권도협회 운영이사, 한국대학 태권도연맹 부회장, 제2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국제심판,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경기위원장, 2002 부산 아시안게임 T.D 2011 WTF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한국선수단 단장, 등을 역임하며 태권도를 이끌어온 그는 청주대학교 사범대학장으로 교직을 마감했다. 현 충북태권도협회장직과 국기원 이사, 국기원 고단자 심사위원, 아시아태권도연맹(ATU) 기술위원장,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등을 맡으면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편집자 주)

▶ 33년 동안 청주대학교 강단에서 ‘태권도계의 황금 손’으로 대학교육과 태권도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오셨는데?

“너무 과찬의 말씀을 하시네요. 주워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요. 1978년 청주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이래 33년 동안 참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세계태권도대회 3연패의 이동준, 한재구, 여성기, 지용석 (청주대학교수) 등 세계선수권과 88 서울 올림픽(시범종목) 금메달리스트를 대거 배출했다. 지민규(충북협회 전무이사), 신재현(2013년 국가대표팀코치)등 많은 우수선수들도 배출했지요. 지금 모두 태권도 지도자들로 좋은 활동들을 하고 있어 기쁘게 생각하고 한쪽으로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

▶ 2002년 청주대학교 사범대학장, 2009년부터는 충북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아 태권도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오셨는데?

“충북태권도협회 태권도전용경기장을 설립 체육문화센터에 태권도전용도장을 만드는 것이다. 태권도전용경기장을 마련할 경우 국제대회 및 전국대회를 많이 유치와 함께 경기력 향상이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신의 (信義)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한 사항이기도 하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실력을 가진 사람도 신의가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라는 것 지금까지 나의 교육 그리고 무도 철학으로 지금까지 태권도발전에 임했다. 우리 충북협회는 다른 시도 협회에 비해 재정적으로 힘들지만 협력하고 상생하는 회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충북태권도협회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이라면 신의를 가지고 우리 협회 가치관이 흔들지 않는 중심 역할이 이라고나 할까 ”라며 겸허하게 말한다.

▶ 태권도 경기지도자로써 지금까지 상당한 업적이 있는데 ?

“ 먼저 제3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대표팀 코치, 제5회 세계대학선수권대회 대표팀 감독 등을 맡은 바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백마장, 대통령 표창, 장관표창, 충북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그리고 제2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국제심판,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경기위원장, 2002 부산 아시안게임 T.D 2011 WTF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한국선수단 단장, 등을 역임하며 태권도 경기력 향상에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대에 못 미친 부분도 많았다. 앞으로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1958년 태권도에 입문, 충북에서 가장 먼저 9단을 취득했는데?

“아니 내가 충북에서 처음 9단이 아니고 두 번째야 정익진씨가 충북에서 처음이고 내가 두 번째로 9단에 승단 했다.”

“태권도 9단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르는 것인데 요즘 태권도는 태권도 단의 의미를 너무 경시하는 풍토가 있다. 전번 월태권도뉴스 창간 1주년 인터뷰에서 엄운규 전 원장님 말씀에서 “9단은 단순히 태권도 실력의 뛰어남으로 승단할 수 없는 것이다.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들을 이끌 수 있는 인격적 자질을 함께 겸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9단은 모든 태권도인들에게 희망과 꿈의 단이다. 9단 지도자에게는 그만큼 사회적 리드로서 책임도 따른다.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태권도 9단자로서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태권도 9단은 사회적 존경과 추앙에 걸 맞는 책임도 뒤따르고 있다. 우선 9단자는 인격적으로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란 말씀에 절대 공감한다. 

“그리고 전번 내가 9단에 승단 했을 때 한 지인이 나에게 한 축시가 생각난다. 신사년 첫 새벽 / 최고 명예인 9단 승단의 쾌보로 / 불을 당겨 주셨습니다. / 어깨를 쭈욱 펼 수 있게 하셨습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 태권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사회나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인 세계화가 되었으면 한다는 주문을 강조 하셨는데?

“먼저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고 한국에서 출발한 스포츠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 태권도의 인적 네트워크 부제 및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역할이 너무 미약하다. 앞으로 태권도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IOC위원 및 각 국가의 스포츠관련자에게 국가차원의 홍보전략 수립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국내에는 많은 태권도대학이 있어 해마다 많은 태권도 지도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졸업 후 학교 태권도 지도자 및 도장 개설은 이미 한계점에 봉착되어 있다. 이제는 정책 적인 지원과 함께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 태권도가 정부가 시행하는 해외 주요시책인 문화 사업의 최고의 장점을 태권도가 가지고 있다. 내가 이사로 있는 국기원부터 정책을 개발하여 경쟁력을 강화 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에서 교수 퇴직 이후에 태권도 행정가로 왕성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정만순 회장을 보니 우리 태권도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 그리고 노하우를 우리 많은 태권도 후배들이 지혜를 묻고 활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만순 회장과 같이 우리나라 태권도에 사랑과 열정을 바치고 있는 지도자들이 있기에 우리 태권도의 미래는 찬란하게 빛날 것임을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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