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무도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과 더불어서 정신이 있다. 지식은

 
 
바람직한 태권도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
태권도는 무도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과 더불어서 정신이 있다. 지식은 태권도 정신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태권도에 대한 지식이라면 모를까, 다른 학문에 대한 지식은 태권도 정신의 큰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보다는 도덕적인 삶의 자세, 신념 등이 태권도의 정신에서 더 중요함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태권도인이란 삶의 자세와 신념 등이 올바른 사람이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 대학교수로서 저서를 많이 낸 사람이 바람직한 태권도인은 아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도 역시 이상적인 태권도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현실의 어떤 모습은 참 우울하다. 태권도인들이 올바른 삶의 자세와 신념보다는 돈과 명예에 집착해서 엉터리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바쁘고 사이비 단체를 만들어서 태권도관원들의 돈을 뜯어먹는 예도 있기 때문이다. 두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사이비단체의 예이다. ‘KAT’라는 단체가 그것이다. KAT는 한국과 미국의 태권도인들의 교류를 통해서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태권도로 이름이 알려진 모 대학 출신의 몇몇 관장들이 참여하였다. 아마도 영어 열풍이 거센 오늘날 미국인들하고 태권도 관원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하면 한 몫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미국 측의 관계자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이 단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몇 태권도 관장들만 남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미국 측 관계자의 꼬임에 빠져 일을 시작한 젊은 관장들은 사소한 의리심 때문에 여전히 KAT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학부모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자기 스승의 도장을 운영하면서 KAT라는 이름을 걸고 자신의 욕심을 챙기려 한 사범도 있고 도장운영에 실패해서 도장도 파산해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면서도 KAT라는 이름으로 협회활동을 하며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도 있다. 원칙적으로 봤을 때, ‘태권도’라는 이름이 자랑스러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화한 것에 있다. ‘태권도’라는 이름이 세계 표준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현지의 외국인 수련생들이 자신의 이름까지 한글로 띠에 새기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태권도의 가치이다. 그런데 돈 좀 벌겠다고 태권도에다 ‘KAT’라고 영어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왜곡된 가치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태권도 수련과 정신이 필요한데, 태권도를 가르치는 일부 관장들이 문제의 주범인 것이다. 정말 우스운 작태이다.또 다른 예는 엉터리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학문적 명예를 구축하려는 태권도인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태권도인이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태권도 수련에만 익숙해서 글을 잘 못 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과 공동작업을 해서라도 연구실적을 쌓아야 하겠고, 결국에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무리를 형성함으로써 자신들의 빈약한 논리성을 보완하려는 사람들과 협력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결과가 기껏,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왔다는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내가 비록 잘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쁜 사람이다!”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연구 실적 좀 만들어 보겠다고 가라데 유입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와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라도 ‘잘은 모르지만’, 혹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자기 부모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해가 된다. 정확히 알기 전에는 부모님을 옹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태권도인은 어떤가? 역사를 정확히 배우고, 한·중·일 3국의 역사와 무예사를 충분히 연구한 사람이 진리에 기초해서 주장한다면 이해 할만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라데 유입론자들은 역사도 모르고 인문학도 모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라데 유입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거기에 합류한다. 즉 ‘잘 모르지만’ 태권도는 가라데의 아류무술라고 말하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모님 험담하는 자식과 다를 바가 없다. 태권도를 팔아서 자신의 학문적 명예를 사는 것이다. 이 모두가 도덕적 수양과 신념을 중심으로 하는 태권도 정신의 부족에서 온다. 바람직한 태권도인이란 도덕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여전히 훌륭한 태권도인들이 많이 있지만, 현실에서 보게 되는 여러 태권도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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